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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속 주인공은 누가봐도 모택동입니다. 마오가 즐겨입던 옷차림, 즐겨하던 동작, 시대를 나타내주는 완장까지...

 이 사진을 풍자로 보기는 힘들지도 모르지만 현대 중국 사회에서 마오에 대한 평가는 제한적이지만 자유로운 편에

속합니다. 한때 절대권력을 누렸던 마오이기에...몇몇 한국분들은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그가 신격화되어 풍자나

비판의 대상에서 예외일 거라고 생각하십니다.

 물론 신격화가 되어있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한국분들의 선입견에 비하면 파격적입니다. ^^ 물론 제한되어 있죠

 그렇다고 전임 국가지도자에 대한 풍자와 비판에 자유로운 중국이 이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생긴것이냐?

 그것은 아닙니다.

 마오의 절대적인 권력만큼 그가 중국의 역사에 끼친 영향은 워낙 강력합니다. 신중국 성립이후 그를 빼놓고는 역사

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바꿔말하자면 현 정권의 정당성을 설명해줍니다. 그도
인간이기에 어떤 잘못을 했지만, 그 잘못은 공산당과 현 정권이 해결했고 중국은 굳건하다는 식의 논리랄까요?

 결국 마오에 대한 비판은 현 정부에게 필요한 만큼만 허용된것이죠.

 그러면서 정리된 것이 "마오는 신중국의 창시자이고 등소평 이후의 지도자는 중국의 새출발을 이끄는 지도자"

  이 논리를 이해하면 중국에서 언론자유가 실현되는 날은 아직 멀었구나 생각하실겁니다.

 제 말에 반대하신다고요?

 그럼 등소평이 자주 입는 옷과 동작으로 저런 동상이나 예술작품을 만드는 중국 국내 작가가 나오면 제 의견을 접겠

습니다.

 

Posted by cdhage

 중국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어 있는 사람은 조선족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다. 중국으로 가는 한국인이 많아지면서 한국인을 상대해본 조선족도 상당수에 달한다. 문제는 서로 폄하하고, 않좋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상대방의 악행을 핑계삼아 정당화시키기까지 한다. 또 문제의 원인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룬다.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이 그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내가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적은 없지만 상대방의 집단은 악행을 저지른 집단이니 내가 그들에게 좀 잘못해도 별 거 아니라는 논리적 비약까지 보인다.

 한 민족이고 말이 통하는 사이여서 문제가 없을 법한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에 무엇이...왜? 문제일까?

 문제는 한민족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런 동질감을 바탕으로 전개된 자의적 해석은 더 큰 화를 불러온다.

 한민족이니 서로 돕는다는 생각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한국인과 조선족은 같은 핏줄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유대감을 쌓기 힘들다.그래서 같은 한 민족이어서 믿고 같이 잘해보려고 했지만 충돌이 자주 생긴다. 이런 문화적/사고방식의 차이가 중국인을 상대할 때 생겼다면 그냥 넘겼겠지만, 동질감을 느낀 한민족 사이에서 발생했다면 애초의 믿음보다 더욱 큰 불신과 갈등으로 번진다.

 조선족은 한민족이 틀림없다. 하지만 다민족국가인 중국에서 생활한 조선족은 우리와는 너무다르다. 중국은 민족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듯하면서 강력한 사상통제 및 동화정책을 펼쳤다. 이 점이 바로 다른 해외교포들과 중국 조선족들과의 차이이다. 그들은 한민족의 핏줄을 지녔지만 중국에서 태어나고 한족중심의 중국문화환경에서 성장한 중국인이다. 이런 조선족에 대한 이해 없이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에 사로잡힌 한국인에게 조선족과의 문화적차이는 배신감 혹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악행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조선족에게 비춰지 한국인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민족이라는 동질감을 찾고 서로에게 접근한 근본적인 목적은 개인적인 이득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목적을 달성했을 때 혹은 실패했을 때 동질감을 버려지게 되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실망만이 남게 된다. 혹은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보다 같은 민족이니까 그들은 나에게 이런 도움을 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고 앙금만 남는다. 차라리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런 기대도 없었을 것이고, 관계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또 많은 이들이 귀화를 원하고 제도적 도움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그들은 한민족 핏줄을 갖고 있는 조선인이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한반도가 아닌 비옥한 중국 동북지방이다. 그래서 수 년간 일한 후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갈 조선족이 상당수이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한국에서 금전적인 성공을 거두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실제로 독립운동유공자는 대부분 해방후 귀국하였다. 조선족의 대부분은 생업을 위해서 청말에 건너갔거나 일제시대때 건너간 분들이지 그들 모두가 독립운동을 한 분의 자손은 아니다. 물론 잊혀지고 누락된 유공자의 후손은 합당한 대우가 필요하다. 하지만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귀화요건을 낮추다가는 빰맞고 떠나는 배에 손만 흔들게 될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보다 중국을 더 마음의 안식처로 느끼고, 조선족의 상당수가 한국에서 돈을 모아 중국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 또한 그들의 조국은 대한민국 말고도 조선인민주의공화국도 있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대한민국을 선호한다는 것을 감안하여 현명하게 대처해나가는 한국정부가 되었으면 한다.

 한국인들도 조선족은 한민족의 핏줄을 갖고 있는 중국인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이 사실을 서로가 받아들일때 비로소 서로에 대한 불신과 앙금이 해소될 것이다.
Posted by cdhage

 세계 명문대로 도약하려는 카이스트의 개혁으로 인해 한반도가 시끄러웠다. 여론은 카이스트 개혁에 비난을 퍼부었지만, 정작 카이스트 개혁의 직접적 관련자인 학생과 교수의 의견은 소외되었다.

 이런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서울대 평준화(?)논란! 서울대 자신의 의도보다는 제 3자가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던 그 때의 논란.

 그런데 이런 일이 최근 중국에서도 있었다.그 일은 다음 기사를 참조.[
베이징대 “극단적 사상 관리”] 최근 불거진 논란은 아니고 얼마전부터 계속 논란이 되었던 것으로 역시 중국언론을 뜨겁게 달구었고 북경대 졸업생들을 비롯한 교수들까지도 이 일에 관련해서 여러 의견을 내놓았었다.

 나는 북경대의 이번사건에서 과거 서울대 평준화 논란이나 최근 카이스트개혁에 대한 여론형성과정에서 존재하는 유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의 이슈를 다룬 한겨레의 기사에서는 각국의 명문대들이 이슈화되는 원인과 과정을 한 눈에 살 필수가 있었다. 


1. 언론에 의해서 선동되는 사태의 본질

 ‘문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발표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다. 상담프로그램이라는 아무런 문제의 소지가 없는 평범한 것이 북대에 의해 꺼내졌을 때는 그 성격이 달라졌다. 
 북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상담제도는 혼자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주변 교수님들의 능력이 닿지 않을때 학과별로 별도의 조직을 통해 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사실 명문대에서 학생들의 자살문제는 공공연한 비밀이자 학교가 풀어야할 과제이다. 때문에 과거에서부터 유사제도는 계속 존재해왔고, 이번에 북경대가 이런 제도를 명문화하고 공식화한 것이다.


 만약 <북경대 ‘문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이라는 기사가 작성되었다면 보면 그냥 소식을 전하는 뉴스일뿐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학생식당 음식값이 2마오(약 35원) 올랐다고 학교 운영을 비판하는 ‘급진적 사상을 가진’ 학생들도 대상”>이라고 기사를 적으면 문제는 달라진다.

 베이징대가 문제학생의 유형으로 제시한 10가지 중 한가지에 치우치고, 학생처장의 인터뷰에서도 제도의 주 목적을 언급한 바로 앞문장은 쏙 빼놓은채 논란의 씨앗이 될 만한 자극적인 부분을 발췌한 언론은 곱게 봐줄 수가 없다(한겨레가 저렇게 한것은 아닙니다. -.ㅡ) 더군다나 여론의 형성과정과 진행과정에서 상담제도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베이징대와 베이징대 학생들의 의견은 빠져있다.


 물론  여론의 우려처럼  '문제학생'을 선정하고 제도를 운영하는데 이런 폐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에서 문제되는 것은 제도의 도입 목적은 놔두고 발생가능한 문제점만을 부각시키면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2. 비판적 여론의 확산

 위에서 언급한 언론의 보도가 연이어 노출되면서 비평도 쏟아진다. 틀어진 문제의 핵심 때문에 비평의 핵심도 잘못되어 있고 그 여파는 일파만파 커진다. 촛점은 급진적 사상을 통제하는 베이징대가 되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여론이 절대다수에 의해 한 쪽으로 치우쳐서 건설적인 토의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오히려 대세에 반대하는 소수의 의견에 맹공을 퍼부어 싹을 자르려는 모습이다. 그런 행태들은 상담제도를 반대하는 건설적인 비판으로도, 북대의 학풍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한 건전한 비판으로도 보이지가 않았다. 
 상담제도를 사상통제로 해석하여 맹공을 퍼부은 언론과 여론. 하지만 예전부터 존재했던  학급마다 담당 교수를 지정하여 별도의 활동을 하게 했던 학년주임제도는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가? 유사제도는 1:1 사상통제이고 주임제도는 1:다의 사상통제 수단인가?

 사실 북대가 발표한 10가지 대상의 학생은 포괄적인 개념이고 상담제도의 세부계획과 규정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음에도 언론과 여론은 북대의 상담제도를 비판하고 북대의 시커먼 속내를 파헤치려고만 한다. 그렇기때문에 언론의 시퍼런 칼날의 방향이 잘못되었고 소식을 주로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여론은 잘못된 방향으로 형성되었다.



 베이징대를 졸업한 내 생각은 이렇다.  중국에서 대학들이 학교운영의 비판을 막으려는 의도였다면 굳이 이런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예전부터 일정수준의 통제는 줄곧 존재했으니 베이징대나 다른 대학들에게 학생을 통제하는 별도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
 흐트러진 촛점을 다시 잡아보자. 북대가 예를 들었던 10가지 대상학생은 줄지않는 자살이나 탈선학생들에 대한 분석결과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어 사용이나 예시의 부적절함은 있었지만, 북대의 이번 시도와 사상 억압과는 거리가 있다. 혹 급진적 학생을 대상에서 빼면 상담제도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비난의 여지는 여전하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은 평등사회의 구호나 개인적 수치심을 이유로 비판할 것이고, 우울증이나 부적응 학생에 대한 이유는 공개된 상담이 사태를 악화시킨다면 반대할 것이다. 

 물론 이런 이유들이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발생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훗날 베이징 대에서 자살이나 탈선의 비극이 일어나게 된다면 학교의 무관심이나 미숙한 대처를 이유로 비난을 쏟아지지 않을까? 결국 반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 맹목적인 비판보다는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반대와 비판을 하는 것이 성숙한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닐까?

 카이스트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카이스트 개혁의 길이 옳았다면 문제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언론을 통해 들은 카이스트의 개혁"은 내가 생각해도 이점보다 문제점이 많아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카이스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3자일 뿐이다. 개혁이 성공적일지 지금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판단할 경험도 능력도 없다. 실제로 일부 언론이나 인터넷에는 개혁에 대한 카이스트인들이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와 여론은 자살과 개혁을 연관시키며 시퍼런 칼날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사실 베이징대에서도 매년 적지 않은 학생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자살을 하고, 살인까지 벌어진 적이 있다. 이번 카이스트와 비슷하게 3~4개월의 짧은 기간동안에 수명의 학생이 자살을 택한 적도 있다.

 북대는 이를 막으려고 상담제도를 도입하다 역풍을 맞았고, 카이스트는 이런 일들이 최근 학교의 현안과 맞물려 역풍을 맞았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대학이기 때문에 국민의 비판과 관심은 감안해야 하겠지만, 국민들도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언론에 휘말리지 않고 대학에 대한 믿음과 건설적인 비판을 하며 힘을 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P.S.-1 참고로 북대의 선진일류대학으로의 노력을 소개하면 모든 수업에서 청강생 중 1%는 낙제를 받게 된다.  또 4년동안 낙제과목이 8개를 넘으면 졸업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은 내가 재학했을때 기준으로 5개로 줄인다는 계획도 있었으나 실행여부는 미지수. 또 낙제이외의 경우에는 재수강이 불가능하다. 한 번 성적받으면 그게 끝. 고학년이 되어서 학점올리기위해 재수강은 원천불가.
 
P.S-2 위의 것은 제도적으로 규정된것이고....교수님들의 자부심이 높아서 학점은 낮게 주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음. 학점은 낮게주며 경쟁심을 유발하여 모두의 발전을 가져온다고 여김. 인문학에서 만점이란 불가능하다며 낮은 학점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북대의 험난한 학사과정을 거치면 북대에서는 낮은 학점을 받지만 실력은 쑥쑥 자라서 외국에 나가면 더욱 돋보이기 때문에 더욱 혹독한 학위과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함. 
 그러다보니 학생들의 부적응과 자살문제는 북대도 예외가 아님.
Posted by cdh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