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보험밀도와 침투도[각주:1]는 낮다.

글로벌 보험사....우리나라 상위사들은 그들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2019년 중국의 보험밀도와 침투도는 여전히 낮고 중국인들은 아직도 보험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세계가 중국의 보험업을 주목하고 그들의 발전에 놀라고 있다.

 

무엇이 달라진걸까?

 

그 변화의 중심에 서있는 보험사 CEO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사람이 보험을 사지않는 것이 아니라, 중국 보험사가 소비자가 살만한 보험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이 간단하고 명쾌한 CEO의 한 마디는 사실 기본적이고 원론적이다.

보험업이 아니어도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실천은 매우 어렵다.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보험사도 마찬가지였다.

 고객을 위한 마케팅, 브랜딩에는 능하지만 상품에서 큰 변화는 없었다. 왜일까?

 소비자의 니즈를 알지만 사업성, 리스크 등을 이유로 등한시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저 중국회사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CEO의 저 말을 보았을때 매우 놀라웠고 경외감까지 들었다.

 

 실제로 중국의 발전사례를 들은 사람들은 부정하거나 약점을 찾아내려고 한다. 실제로는 별거아니라는 듯이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차종이 다양해서 안되 중국이랑 달라", "우리랑 중국은 업무프로세스가 달라"[각주:2]

 

 실제로 규제 등의 차이로 중국의 사례를 한국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하지만 혹시라도 지금까지 잘해오고 있었기에 급변하는 중국의 보험업을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또는 현실에 안주하거나 만족하기 때문에 다가오고 있는 변화를 부정하는 것은 아닐까?

 

 시장이 포화되어 사람들이 더이상 보험을 가입하지 않는다면....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기업의 존재 이유이고 생존의 길이다...

 

 보험업 수준이 우리보다 낮은 중국에서도 소비자의 니즈를 겨냥했을 때 사람들은 보험에 가입하였다. 

 보험을 불신하던 중국 소비자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보험은 그들에게 필요한 상품이 되고, 소비자는 자신이 필요한 상품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 차례다. 누가 먼저 시작할 것인가?

 

 

 

 

  1. 보험산업의 발전수준을 나타내는 지표 [본문으로]
  2. 차량대수, 브랜드, 모델유형 그 어떠한 것을 놓고봐도 중국의 다양성과 규모는 압도적이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의 업무프로세스는 대동소이하다. 결국 보험이 해야할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본문으로]
Posted by cdhage

제목에 잣대라는 표현을 쓰면서 "올바른 잣대"라고 쓸 수가 없다.

논쟁을 하다보면 자주 나오는 "틀린"것과 "다른"것은 차이가 있다는 말.

중국인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단정지을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이글을 쓰게 되었다.

물론 개개인의 생각의 자유와 인류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결론을 내린다면.....이 글을 거시기 해진다. ^^

 

 나는 중국에 5년동안 살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중국인에 대해서 혹은 중국사회에 대해 빨리 아무말이나 해보라고 재촉한다면 나는 "극도의 개인이기주의"라고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승리를 위해 궤변과 돌발 행동도 서슴치 않고, 타인에게 당당하고 쉽게 굽히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이로운 사람 혹은 강한 이에게는 상냥하고 달콤하게 다가가는...

 

  하지만 이게 그들의 문화인가?라는 생각을 해보면 더 깊게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한국인들이 중국(혹은 중국인)하면 흔히 떠올리는 짱깨,지저분함,후진국 등의 이미지...이 단어들은 중국을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걸까? 다르게 얘기하면 내가 중국하면 떠오르는 "극도의 개인이기주의"라는 이 생각이 중국을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모두 지어낸 것이 아니고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니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성급한 가치판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때문이다.

 

 내가 5년 동안 치고 박고 어울리며 일어난 중국인들과의 에피소드들이 내 생각에 담겨져있고, 한국인들이 중국하면 떠올리는 것들도 경제적 열등함에 대한 멸시가 묻어있어서가 아닐까? 그런것을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중국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어떻게 내릴 것이며, 그들의 행동이 멸시나 비판을 받을 정도의 문제인가? 문화/가치관적 요소는 충분히 고려가 되었는가? 등의 문제는 어떻게 된것일가?

 

 그래서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중국에 대한 선입견과 나 스스로가 안고 있는 중국에 대한 생각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이루어진것일까에 대한 고심...그러다보면 점점 더 배가 산으로 간다 ^^

 

 [에이~~다 알지...중국은 지금 못사니깐 저러는거...잘 살면 쟤들도 씻고 그러겠지. 누가 그게 중국의 문화라고 했나?] 라고 생각도 들지만 지금 중국인들의 행동 속 깊숙한 곳에 숨겨진 중화사상의 흔적을 보면 정말 어지럽다.또 인류의 1/5을 차지하고 있어서 전세계사람 20%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할지 몰라도 인류의 보편적 특성(매너)을 따르지 않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할까?

 

 사람이 많으니 별별 사람 다있지~!

 사회주의식 교육/문화의 특성이지(예:문화대혁명)

 

 중국을 설명할 때 이유로 자주 나오는 것들이다.

 

 하지만 사람이 별의별 사람이 많은 것과 그런 사람의 비율이 높은 것은 다르다.

또 사회주의식 문화라는 것 역시 현재 개발도상국의 행태와 같이 가변적인 특성이다.

 

 중국인은 어떠냐고?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경험했지만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 조심러워진다고 할까? ^^ 그냥 현대의 중국인은 어때? 아니면 중국은 이제 어떻게 될거 같아?라는 질문이 더 쉽다. ^^

 

 그래서 현대의 중국과 앞으로의 중국 혹은 가끔 역사속의 중국을 다시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Posted by cdhage

 경찰서장을 때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경찰을 때린 것이 문제다.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는등의 행위도 절대 있어서 안되는 것은 물론인데...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아닐까?

 시민은 되고 경찰은 안되고??

 그런 경찰이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Posted by cdhage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제가 여자친구가 있을 때의 일입니다.

고터(고속터미널:여친님께 얻은 신문명의 혜택)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군인이었던 저는 기쁜 마음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약속 장소인 음반가게에 거의 도착을 했었지요. 그녀를 만나기 100m전...50m전...

 제 시야에는 그녀만 보였습니다.

 오랜만에 그녀를 보아서 기뻤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놀려줄까? 라는 생각도 했었죠. 그녀 몰래 뒤로 다가가 그녀를 만나기 1m전...

 그런데 두둥....그녀가 그녀가 아니었습니다.

 뒤에서 안아주려고 했었는데 안지 않은것이 행운이었지요...삐질

 그런데 행운은 거기까지8였습니다.



같은시각, 같은장소, 그녀의 시야


군인인 남친이 멀리서오느라 제가 조금 더 먼저 도착했어요.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데...남자친구가 저 멀리서 오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눈을 마주치지 않고 다른 곳을 보고 있네요. 럴수럴수 이럴수가

  얼씨구...낯선 여자에게 다가갑니다.


이노무씨끼....저 남자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위의 이야기는 제 실화입니다.

 저는 여친인줄 알았던 여성분이 여친이 아니어서 놀랐고, 제가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친이 보고있었다는 걸 알고나서 또 놀랐죠. 내 여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게 너무 부끄러웠고, 여자친구에게 너무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도통 생각이 안나더군요. 물론 온갖 미사여구로 여친의 화를 풀어주려고 했었지만...그러면서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씻을수 없는... 돌이키지 못할 큰 상처를 남겼다는 것을...


 제가 철지난 사랑얘기를 꺼내든 이유는 저 이야기에서 유추하고 싶은 사람의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바로 인간이 갖고 있는 정신적인 힘.뚝심에 관한 것에 대해서죠. 한번 마음먹으면 당최 그것을 되돌리기 힘든...그런 거요

 사람은 주관적인 동물입니다.  그래서 객관적인 정보도 주관적인 시각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하죠. 그래서 사람의 인생에서 긍정적/비관적 성격은 매우 중요합니다.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한 자극이나 정보를 받았을 때 일어나는 일련의 사고 과정과 결과가 판이하게 다르니깐요. 비관적인 성격의 사람은 비관적인 뚝심을 갖고 안되..안되를 거듭하는 반면 긍정적인 사람은 할수있다는 마음으로 도전을 거듭하죠.

 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그녀를 만나기 50m전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제 여자친구와는 달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그녀가 제 여친이라 믿고 있었고, 여자친구가 파마를 했나보다...라는 해석을 내렸죠. 옷입는 스타일도 달랐었고, 이래저래 제 여친의 일반적 모습에서 다른 점이 많았지만, 저는 그런 것들을 무시 혹은 자의적으로 해석했습니다.

 50m전에서 바라본 한 여성의 뒷모습이 여자친구와 닮았다는 이유로 여자친구라고 확신하고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얻게되는 정보들을 하나씩 왜곡했던 거죠. 그렇게 저는 파멸의 길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파멸의 길로 빠지게 되었지만 이런 인간의 주관적 특성은 위대한 탄생의 밑걸음이 되기도 합니다.  모두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왜 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할 수 있다고 믿으면 결국 해내는 사례를 종종 볼 수가 있잖아요.

  인간의 정신력이란 참으로 무섭습니다. 이 무서운 정신력이 나에게 인류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한 길을 나가는...그런 모습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랑얘기로 시작해서 뺑돌아 장엄하게 얘기를 끝마치네요.

和平
Posted by cdhage
학창시절의 노력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것이다
대학에서 세상을 보는 눈을 익혔고, 더 넓은 세계로 나가기 위한 내게 주어진 의무도 무사히 마쳤다.

지금까지 노력은 바로 오늘을 위했던 것이요...앞으로 더 높고 푸른 미래를 위한 것이다.

이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본격적인 삶을 시작하려 한다.

다른 길을 염두해두며 살아왔기에 막상 이 길을 가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어려웠지만

난 이 길을 간다.

Posted by cdhage
일가지언/VS 바로2011. 6. 2. 20:18

찐바루는 군에 가서도 변하지 않았다는걸 오늘 다시한번 확인했어

다행인거지?

입대하기 전에 형이 군에서 겪게될까봐 걱정했던 것들이 형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니 다행이고 마음이 놓이네.

포상은 다다익선이니깐....많이 얻도록 노력하고...

형 말대로라면 맡은 일만 해도 많이 나올거 같은데....

화이팅.

그리고 오늘 먹었던 정식. 꼭 기억해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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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dhage

 중국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어 있는 사람은 조선족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다. 중국으로 가는 한국인이 많아지면서 한국인을 상대해본 조선족도 상당수에 달한다. 문제는 서로 폄하하고, 않좋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상대방의 악행을 핑계삼아 정당화시키기까지 한다. 또 문제의 원인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룬다.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이 그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내가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적은 없지만 상대방의 집단은 악행을 저지른 집단이니 내가 그들에게 좀 잘못해도 별 거 아니라는 논리적 비약까지 보인다.

 한 민족이고 말이 통하는 사이여서 문제가 없을 법한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에 무엇이...왜? 문제일까?

 문제는 한민족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런 동질감을 바탕으로 전개된 자의적 해석은 더 큰 화를 불러온다.

 한민족이니 서로 돕는다는 생각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한국인과 조선족은 같은 핏줄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유대감을 쌓기 힘들다.그래서 같은 한 민족이어서 믿고 같이 잘해보려고 했지만 충돌이 자주 생긴다. 이런 문화적/사고방식의 차이가 중국인을 상대할 때 생겼다면 그냥 넘겼겠지만, 동질감을 느낀 한민족 사이에서 발생했다면 애초의 믿음보다 더욱 큰 불신과 갈등으로 번진다.

 조선족은 한민족이 틀림없다. 하지만 다민족국가인 중국에서 생활한 조선족은 우리와는 너무다르다. 중국은 민족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듯하면서 강력한 사상통제 및 동화정책을 펼쳤다. 이 점이 바로 다른 해외교포들과 중국 조선족들과의 차이이다. 그들은 한민족의 핏줄을 지녔지만 중국에서 태어나고 한족중심의 중국문화환경에서 성장한 중국인이다. 이런 조선족에 대한 이해 없이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에 사로잡힌 한국인에게 조선족과의 문화적차이는 배신감 혹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악행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조선족에게 비춰지 한국인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민족이라는 동질감을 찾고 서로에게 접근한 근본적인 목적은 개인적인 이득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목적을 달성했을 때 혹은 실패했을 때 동질감을 버려지게 되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실망만이 남게 된다. 혹은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보다 같은 민족이니까 그들은 나에게 이런 도움을 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고 앙금만 남는다. 차라리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런 기대도 없었을 것이고, 관계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또 많은 이들이 귀화를 원하고 제도적 도움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그들은 한민족 핏줄을 갖고 있는 조선인이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한반도가 아닌 비옥한 중국 동북지방이다. 그래서 수 년간 일한 후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갈 조선족이 상당수이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한국에서 금전적인 성공을 거두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실제로 독립운동유공자는 대부분 해방후 귀국하였다. 조선족의 대부분은 생업을 위해서 청말에 건너갔거나 일제시대때 건너간 분들이지 그들 모두가 독립운동을 한 분의 자손은 아니다. 물론 잊혀지고 누락된 유공자의 후손은 합당한 대우가 필요하다. 하지만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귀화요건을 낮추다가는 빰맞고 떠나는 배에 손만 흔들게 될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보다 중국을 더 마음의 안식처로 느끼고, 조선족의 상당수가 한국에서 돈을 모아 중국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 또한 그들의 조국은 대한민국 말고도 조선인민주의공화국도 있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대한민국을 선호한다는 것을 감안하여 현명하게 대처해나가는 한국정부가 되었으면 한다.

 한국인들도 조선족은 한민족의 핏줄을 갖고 있는 중국인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이 사실을 서로가 받아들일때 비로소 서로에 대한 불신과 앙금이 해소될 것이다.
Posted by cdhage

 세계 명문대로 도약하려는 카이스트의 개혁으로 인해 한반도가 시끄러웠다. 여론은 카이스트 개혁에 비난을 퍼부었지만, 정작 카이스트 개혁의 직접적 관련자인 학생과 교수의 의견은 소외되었다.

 이런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서울대 평준화(?)논란! 서울대 자신의 의도보다는 제 3자가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던 그 때의 논란.

 그런데 이런 일이 최근 중국에서도 있었다.그 일은 다음 기사를 참조.[
베이징대 “극단적 사상 관리”] 최근 불거진 논란은 아니고 얼마전부터 계속 논란이 되었던 것으로 역시 중국언론을 뜨겁게 달구었고 북경대 졸업생들을 비롯한 교수들까지도 이 일에 관련해서 여러 의견을 내놓았었다.

 나는 북경대의 이번사건에서 과거 서울대 평준화 논란이나 최근 카이스트개혁에 대한 여론형성과정에서 존재하는 유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의 이슈를 다룬 한겨레의 기사에서는 각국의 명문대들이 이슈화되는 원인과 과정을 한 눈에 살 필수가 있었다. 


1. 언론에 의해서 선동되는 사태의 본질

 ‘문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발표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다. 상담프로그램이라는 아무런 문제의 소지가 없는 평범한 것이 북대에 의해 꺼내졌을 때는 그 성격이 달라졌다. 
 북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상담제도는 혼자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주변 교수님들의 능력이 닿지 않을때 학과별로 별도의 조직을 통해 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사실 명문대에서 학생들의 자살문제는 공공연한 비밀이자 학교가 풀어야할 과제이다. 때문에 과거에서부터 유사제도는 계속 존재해왔고, 이번에 북경대가 이런 제도를 명문화하고 공식화한 것이다.


 만약 <북경대 ‘문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이라는 기사가 작성되었다면 보면 그냥 소식을 전하는 뉴스일뿐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학생식당 음식값이 2마오(약 35원) 올랐다고 학교 운영을 비판하는 ‘급진적 사상을 가진’ 학생들도 대상”>이라고 기사를 적으면 문제는 달라진다.

 베이징대가 문제학생의 유형으로 제시한 10가지 중 한가지에 치우치고, 학생처장의 인터뷰에서도 제도의 주 목적을 언급한 바로 앞문장은 쏙 빼놓은채 논란의 씨앗이 될 만한 자극적인 부분을 발췌한 언론은 곱게 봐줄 수가 없다(한겨레가 저렇게 한것은 아닙니다. -.ㅡ) 더군다나 여론의 형성과정과 진행과정에서 상담제도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베이징대와 베이징대 학생들의 의견은 빠져있다.


 물론  여론의 우려처럼  '문제학생'을 선정하고 제도를 운영하는데 이런 폐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에서 문제되는 것은 제도의 도입 목적은 놔두고 발생가능한 문제점만을 부각시키면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2. 비판적 여론의 확산

 위에서 언급한 언론의 보도가 연이어 노출되면서 비평도 쏟아진다. 틀어진 문제의 핵심 때문에 비평의 핵심도 잘못되어 있고 그 여파는 일파만파 커진다. 촛점은 급진적 사상을 통제하는 베이징대가 되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여론이 절대다수에 의해 한 쪽으로 치우쳐서 건설적인 토의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오히려 대세에 반대하는 소수의 의견에 맹공을 퍼부어 싹을 자르려는 모습이다. 그런 행태들은 상담제도를 반대하는 건설적인 비판으로도, 북대의 학풍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한 건전한 비판으로도 보이지가 않았다. 
 상담제도를 사상통제로 해석하여 맹공을 퍼부은 언론과 여론. 하지만 예전부터 존재했던  학급마다 담당 교수를 지정하여 별도의 활동을 하게 했던 학년주임제도는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가? 유사제도는 1:1 사상통제이고 주임제도는 1:다의 사상통제 수단인가?

 사실 북대가 발표한 10가지 대상의 학생은 포괄적인 개념이고 상담제도의 세부계획과 규정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음에도 언론과 여론은 북대의 상담제도를 비판하고 북대의 시커먼 속내를 파헤치려고만 한다. 그렇기때문에 언론의 시퍼런 칼날의 방향이 잘못되었고 소식을 주로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여론은 잘못된 방향으로 형성되었다.



 베이징대를 졸업한 내 생각은 이렇다.  중국에서 대학들이 학교운영의 비판을 막으려는 의도였다면 굳이 이런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예전부터 일정수준의 통제는 줄곧 존재했으니 베이징대나 다른 대학들에게 학생을 통제하는 별도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
 흐트러진 촛점을 다시 잡아보자. 북대가 예를 들었던 10가지 대상학생은 줄지않는 자살이나 탈선학생들에 대한 분석결과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어 사용이나 예시의 부적절함은 있었지만, 북대의 이번 시도와 사상 억압과는 거리가 있다. 혹 급진적 학생을 대상에서 빼면 상담제도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비난의 여지는 여전하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은 평등사회의 구호나 개인적 수치심을 이유로 비판할 것이고, 우울증이나 부적응 학생에 대한 이유는 공개된 상담이 사태를 악화시킨다면 반대할 것이다. 

 물론 이런 이유들이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발생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훗날 베이징 대에서 자살이나 탈선의 비극이 일어나게 된다면 학교의 무관심이나 미숙한 대처를 이유로 비난을 쏟아지지 않을까? 결국 반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 맹목적인 비판보다는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반대와 비판을 하는 것이 성숙한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닐까?

 카이스트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카이스트 개혁의 길이 옳았다면 문제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언론을 통해 들은 카이스트의 개혁"은 내가 생각해도 이점보다 문제점이 많아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카이스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3자일 뿐이다. 개혁이 성공적일지 지금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판단할 경험도 능력도 없다. 실제로 일부 언론이나 인터넷에는 개혁에 대한 카이스트인들이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와 여론은 자살과 개혁을 연관시키며 시퍼런 칼날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사실 베이징대에서도 매년 적지 않은 학생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자살을 하고, 살인까지 벌어진 적이 있다. 이번 카이스트와 비슷하게 3~4개월의 짧은 기간동안에 수명의 학생이 자살을 택한 적도 있다.

 북대는 이를 막으려고 상담제도를 도입하다 역풍을 맞았고, 카이스트는 이런 일들이 최근 학교의 현안과 맞물려 역풍을 맞았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대학이기 때문에 국민의 비판과 관심은 감안해야 하겠지만, 국민들도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언론에 휘말리지 않고 대학에 대한 믿음과 건설적인 비판을 하며 힘을 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P.S.-1 참고로 북대의 선진일류대학으로의 노력을 소개하면 모든 수업에서 청강생 중 1%는 낙제를 받게 된다.  또 4년동안 낙제과목이 8개를 넘으면 졸업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은 내가 재학했을때 기준으로 5개로 줄인다는 계획도 있었으나 실행여부는 미지수. 또 낙제이외의 경우에는 재수강이 불가능하다. 한 번 성적받으면 그게 끝. 고학년이 되어서 학점올리기위해 재수강은 원천불가.
 
P.S-2 위의 것은 제도적으로 규정된것이고....교수님들의 자부심이 높아서 학점은 낮게 주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음. 학점은 낮게주며 경쟁심을 유발하여 모두의 발전을 가져온다고 여김. 인문학에서 만점이란 불가능하다며 낮은 학점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북대의 험난한 학사과정을 거치면 북대에서는 낮은 학점을 받지만 실력은 쑥쑥 자라서 외국에 나가면 더욱 돋보이기 때문에 더욱 혹독한 학위과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함. 
 그러다보니 학생들의 부적응과 자살문제는 북대도 예외가 아님.
Posted by cdhage

 한국어에는 중국인을 떼놈이라고 하는 표현이 있죠. 좋은 일에는 절대 쓰이지 않고 좋지 않은 용도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 중 중국인의 상술에 피해를 입었을 때 떼놈..떼놈..떼놈...을 연발하게 되지요. 우리는 중국인의 상술에 피해를 입고 통곡하는데 중국인들은 오히려 한국사람은 도저히 못당하겠다고 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들의 예를 인용하자면 한국의 DMZ 관광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한국의 어두운 면인 분단의 현실까지도 관광상품화했다는 이유입니다. 그 밖에도 중국상인들은 한국인 손님들이 너무너무 흥정에 능해 도저히 못당한다고 엄살(?)을 부립니다. 이쯤되면 상술이 뛰어난 중국인에게까지 인증받은 한국인의 상술이 세계 최고로 등극하는 것인가요?

 저런 이야기를 듣고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중국관광지에 비해 상업적 인프라와 아이디어가 넘치는 한국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더 많은 관광수입을 올리기에 고뇌하는 현대한국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아직 부족하고 더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모습조차 중국인들에게 뼈 속까지 상인의 기질이 박힌 한국인의 이미지가 각인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중국인의 생각들은 특정민족의 기질의 차이보다는사회발전정도와 나라별 인식차에서 생긴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한국을 알리어 국가브랜드도 제고하고 관광수입을 올리기 시작한 한국.그에 비하면 중국은 이제 걸음마 수준입니다. 천혜의 자원을 갖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것을 상업화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관광산업의 주 소득원은 입장료나 기념품 판매등 1차적 수입들이 위주일 것입니다[각주:1]. 한국 관광지의 세세한 아이디어와 그 뒤에 숨겨진 $$의 유혹을 경험한 중국인들은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장사 기질에 감탄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전 세계에 한국 관광지보다도 치밀하게 상업적 마인드가 접목된 수 많은 관광지도 생각해야죠.  그걸 감안하면 상업적 기질분야에서 중국인 <<<한국인<<<<<<<<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를 갖은 나라국민..이렇게 되나요?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그것은 기질보다는 관광산업 혹은 사회의 발전단계에 따라 생기는 차이일 뿐입니다. 현재의 모습이 국민의 기질을 반영하거나 영원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 결국 중국도 한국의 뒤를 밟거나 넘어서게 될 것이라는것. 중국인도 감탄하는 우리의 상술이지만, 1위에 대한 감탄보다는 선구자에 대한 감탄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물건의 가격 뒤에 숨어진 상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중 양국 모두 정찰제보다는 에누리가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바로 이 에누리에 각 나라의 문화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 다음부터는 제가 한국인이다보니 아무래도 친한국적으로 글이 전개되는 점 고려해주십시오.

 한국인의 에누리는 인간의 온기, 精이 담겨 있습니다. 소비자는 10원 다 주고 사도 쫄쫄 굶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깍습니다.왠지 깍아야 될 것 같고, 싸게사면 기분도 좋고 돈도 절약하고 좋습니다. 판매자도 10원주고 팔아야 되지만 굶어죽는 것은 아니니 깍아줘도 탈은 없습니다. 조금 깎아주고 당장의 손해는 보아도 친분이 생기면서 장기적인 고정손님이 늘어나니 괜찮습니다. 

 반면 중국의 경우 에누리의 범위가 더 넓어집니다. 처음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느정도가 적정가격인지 가늠해볼 수 없습니다. 물건을 살 때는 꼭 여러곳에서 비교해보고 사라는 말도 있습니다. 파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 많은 이익을 우선시하기에 적정가의 몇 배의 수익을 얻으면 오히려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일입니다. 사는 사람도 이런 정황을 알고 있으니 처음 제시한 가격을 사정없이 난도질하죠.

 한국의 경우 서로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며 흥정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이익을 우선시하다보니 적정가격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본전에 몇 배의 이익을 거둘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입니다. 소비자도 이런점을 알고 있는 이상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중국인의 상업적 기질이 훨씬 더 뛰어나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위의 예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많은 분야에서 한국인의 상술도 중국인에 뒤지지는 않죠. 그러니 에누리에 다른 외국인보다 익숙한 우리는 중국에서 밑도 끝도 없이 깍아내립니다. 하지만...그래도 왠지 속고 산 것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인의 상업적 기질이 더 뛰어난 게 아닐까요? 결국 한국인도 못당하는 중국인이니

 사실 한국인 말고 미국/일본/프랑스/영국인들도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닐까요? 다만 그들은 정찰제에 익숙해 에누리가 거의 없을 뿐. 3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금전적 이득을 마다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특정 민족이나 국민의 상업적 기질에 대해 누가 앞서고 뒤쳤졌는지 혹은 누가 좋고 나쁜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부적절해보입니다.  다같이 돈에 대한 욕망에 흠뻑 취해있으니 도토리키재기겠죠. 위에서 예로 들었던 사례처럼 문화적/사회적 차이를 상업적 기질과 결부시켜 해석하다보면 오해가 쉽게 생길듯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런데 다른나라사람은 그렇지 않으니...상술이 뛰어나다...라는 이상한 논리로 빠지면서요. 환경과 문화적 차이를 곧바로 특정민족/국민의 자질과 연계지어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중국인의 상술은 무섭습니다 .^^무서운건 무서운 거니깐요 ^^
 
 쓰다보니 예전에 읽었던 책이 기억나네요 약 100여년전 중국을 다녀가 서양인이 쓴 견문록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우리가 갔던 곳, 그 중에서도 우리가 은연중에 쳐다보고, 손짓했던 곳은 그 다음날이면 항상 큰 구덩이가 생겼다. 중국인들은 우리가 보고 가리킨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곳에는 틀림없이 금이 있을거라고 의심했다."
  1. 이것은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cdhage

 언제부턴가 중국 진출은 성공을 위한 필수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13억의 거대시장을 품은 중국. 지구인 5명중 1명은 중국 대륙에 살고 있다[각주:1].
 
 전세계에 손짓하는 중국에 더더욱 기업들은 더 큰 꿈을 품게 된다.

  하지만 중국은 결코 개방적이지 않은 사회이다. 오히려 폐쇄적인 사회다.

 자신과 연계된 이와 그렇지 않은이에 대한 구분이 확실한 사회.
 
 간혹 농담처럼 건네는 自己人의 무서움을 느끼면 섬뜩하기도 하다.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들 한다. 항상 친절하고 웃는 얼굴 뒤에 감쳐진 일본인의 본심

 중국인에게도 겉과 다른 속이 있다.

 그 속을 아는 것은 똑같이 어렵다.

 하지만 희비가 순간순간 바뀌는 겉모습도 종잡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지만, 동일한 사상으로 단일민족국가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국가이다.[각주:2]

 중화사상의 영향인지...중국공산당의 세뇌교육의 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높은 단결력은 중국에게는 힘이요, 타국에게는 위협이다.



 지금 개혁개방을 행하고 있는 모습은 자신의 우월한 지위에서 나오는 배려와 여유가 아닌

 뒤쳐진 자신을 본 중국의 처절한 추격의지와 집념이 빚은 결과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인에게 1개씩만 팔아도 부자된다는 생각의 도전이 좌절하게 되는 원인이다.

 중국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먼나라 이웃나라 중국.

너무 살벌하게 썼나? ㅎㅎ 중국은 거리가 애매하니깐 더 알기 힘든 나라다 ^^
  1. 이는 중화사상을 공유하는 화교,화인을 제외한 수치이다. [본문으로]
  2. 국민 대다수가 한족이기는 하지만... [본문으로]
Posted by cdh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