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에서 그나마 재밌는 걸 찾던 중...돈에 관한게 있어서 ㅎㅎㅎ...우리나라 사람들도 돈에 환장하지만 중국인들은 그에 100만배 환장하기에 ㅎㅎㅎ...지금 앞문장만 봤는데 그나마 다른 것보다는 재밌는것 같아서...자...이제 시작합니다.

 

 

 당대시인 이백은 일생을 명산들을 돌아다니면서 즐기면서 살았다. 그의 흔적은 중국의 반이상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한가지 궁금증을 참을 수 없다. 이백의 그 많은 여행비용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이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역사적 수수께끼는, 오랜 세월동안 적지않은 사람들이 연구했고, 그 설(이야기)도 여러가지다.

 20세기 60년대초,광명일보 1962년 8월 12일자에 실린 이백의 경재래원(來原:출처)에 따르면,이백의 고향은 유명한 소금과 철의 산지였다. 그와 그의 부친과 이백 본인 모두 개인 철매매에 종사했고, 그의 시 중에서도 제철 노동자들의 노동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아래 이백은 천금을 누리는 갑부였고, 세상을 유람할 수 있게 된것이다.

 또 다른 의견은 시인이 유람했던 지방은 모두 상업의 중심지였다. 생활풍경,정치사상 그리고 시(時) 안에서의 묘사들을 보면, 구체적인 시민(市民)의 특징이 드러나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이백은 사업과 관련된 중소지주였고 사방을 유람하는 비용도 자연스럽게 부담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의견은 시인의 독특한 풍부한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백과두보>라는 책에서 보면 이가(家)가 경영하는 상업의 규모는 상당했다.(시중의 한 구절을 인용...이가의 상업규모가 크다는걸 설명)...결론...2명의 돈많은 형과 아우가 보태줬다 ㅎㅎㅎ(슬슬 지겨워져서 간략하게 내용만)..근데 여기서 잠깐 형아우가 보태준 것이 상상력과 무슨 관련이지? 오타인가?이 말한 사람의 상상력인듯...

 기타내용...(정말 귀찮아서..ㅎㅎㅎ)그가 돈많은 실세와 결혼했고...시써주고 돈받기도 했을 가능성도 있고..등등...결론..이백의 돈은 그 출처가 그 자기 자신이건 친구이건, 충분히 귀족적인 생활이 가능하였다. 가끔 어렵기도 해서 도움을 청할때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그의 팔도유람에 결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설마 이백의 이런 팔도강산을 유람하고 술과 시를 즐기는 생활들이, 의식주의 이윤을 위한 장사꾼의 생활이었겠는가?역시 저는 귀차니즘의 학파에 속한 인간입니다...다음에는 아마 번역이 아닌 보구나서 그냥 생각나는대로 쓰는 형식이 될듯...어쩔수 없네요 ....

 

By cdh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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