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라는 민주화 시위가 있었고, 중국정부의 무자비한 제압에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이번 쟈스민 혁명에 대한 포스트를 쓰다보니 중국의 민주화에 대해 조금 건드렸고, 중국의 민주화 시위 역사에 대해 뭉글뭉글 넘어가는 것 같아 따로 포스팅을 따로 하려고 합니다.

 천안문 사태의 발생과정에 대해서는 구글링하시면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전달해드리고 싶은것은 쉽게 찾을 수 없는...혹은 다른 곳에는 없는 저만의 견해 입니다.

 1. 학생들은 민주적이었다?
  
 사실 개도국의 정치환경에서 높은 민주적 의식수준을 보이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중국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 말로는 "민주를 글로 배웠습니다."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딱 맞네요. 당시 그들과 함께하지 않은 후세의 사람으로서 그들에 대해 정확히 논하기는 힘듭니다. 그들은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 나섰습니다. 용감하게 중국정부에 맞섰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들이 보여주었던 행동들은 결코 민주적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표면적으로 민주적 구호를 내건 것과는 반대로 그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행동들은 비민주적이었죠. 조직이 방대해지자 자연스럽게 공동의 목표를 향한 싸움이 아닌 권력을 향한 내부의 다툼이 나타났고, 그과정에서 일어난 비민주적 행동들이 나타났습니다.시위대의 노선을 정할때 자신의 권력과 직결되는 문제를 민주화보다 우선시 하는 모습까지 나타났습니다.또한 중국정부를 향한 막무가내 식의 요구와 행동으로 사태를 어렵게 이끌어가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무자비한 중국정부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피해자(?)가 되었기 때문에 과정에 있어서 불합리하고 잘못된 점들이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서는 안됩니다.
 

2. 시민들은 민주화 시위에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

 
 천안문사태 단계별 시민들의 반응은 달랐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제껏 중국인들이 하지 못했던 것을 나이 어린 학생들이 하는 것을 보고 용감하고 장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게 다일까요? 사실 당시 천안문사태가 베이징 시민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중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것은 시위의 성격에 대한 호불호 탓도 있겠지만 민주화에 대한 시민의식도 한 몫했다고 생각됩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사건을 직접적으로 경험했고, 지금도 그들은 생존해 있습니다. 이것이 중국의 시민의식과 성향에 대한 증거이자 답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사건은 "민주"에 대한 중국민들의 욕구와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편, 그 반대로 중국의 민주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를...즉 난관과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고 생각합니다.


 3. 그 많은 대중들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모인 사람이다?

  
 그들은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위해 용감하게 나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적어도 시위대의 앞에 나서 대중을 선동했던 이들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매우 강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도 내부의 권력암투를 위해 비민주적 행동을 서슴치 않았으며, 정부와의 협상에서 극도대결양상을 펼쳐 상황을 스스로 악화시켰습니다.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그들이, 뜻 깊은 민주화 시위를 수포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는 개인적 생각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화 시위과정에 참여한 많은 참가자들 중 끝까지 남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여기에는 물론 중국정부의 초강경진압도 한몫했죠.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젊은 혈기에 의한 참여나 접해보지 못한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려는 무리 였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건의 요소요소에 있어서 방향을 이끈 것은 비단 중국지도부의 대응뿐만이 아닙니다.민주화 시위세력 역시 사태를 점차 악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즉, 무자비한 중국정부만이 유혈사태까지 벌어지는 참사를 일으킨 주범이 아닌 협상에 대해 서툴고 진정 민주화 의식이 부족한 시위대 역시 사태를 악화시킨 큰 세력입니다.


4. 류사오보는 당시 시위의 주도 세력인가?

 사실 저는 그에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그에 관해서는 천안문 사태에 관련된 내용만 일부 알고 있었을 뿐이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당시 류사오보는 영향력 있는 인사였고, 때문에 파급효과도 대단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이유불문하고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온 그의 행동은 결코 凡人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천안문사태를 이끈 이는 결코 류사오보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류사오보가 당시 천안문 광장에 있었던 이유와 그가 바랬던 시위의 모습도 시위주도세력의 움직임과 모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노벨상을 받고 그가 중국정부의 억압을 받고 있는 상황이 그는 천안문사태의 주도 인물로써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인물로 오인되고 있는 것 같아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그가 중국 민주화 인사일수도 있지만, 천안문 사태의 주도 세력은 아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민주화 시위과정에서 어긋난 점을 그는 알고 있었고, 류샤오보는 이런점들을 교정해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갔고 그는  결코 원하지 않았을 유혈사태까지 일어났죠.
 이런 그를 천안문 사태의 주도적 인물로 해석하는 것은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cdh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