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명문대로 도약하려는 카이스트의 개혁으로 인해 한반도가 시끄러웠다. 여론은 카이스트 개혁에 비난을 퍼부었지만, 정작 카이스트 개혁의 직접적 관련자인 학생과 교수의 의견은 소외되었다.

 이런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서울대 평준화(?)논란! 서울대 자신의 의도보다는 제 3자가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던 그 때의 논란.

 그런데 이런 일이 최근 중국에서도 있었다.그 일은 다음 기사를 참조.[
베이징대 “극단적 사상 관리”] 최근 불거진 논란은 아니고 얼마전부터 계속 논란이 되었던 것으로 역시 중국언론을 뜨겁게 달구었고 북경대 졸업생들을 비롯한 교수들까지도 이 일에 관련해서 여러 의견을 내놓았었다.

 나는 북경대의 이번사건에서 과거 서울대 평준화 논란이나 최근 카이스트개혁에 대한 여론형성과정에서 존재하는 유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의 이슈를 다룬 한겨레의 기사에서는 각국의 명문대들이 이슈화되는 원인과 과정을 한 눈에 살 필수가 있었다. 


1. 언론에 의해서 선동되는 사태의 본질

 ‘문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발표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다. 상담프로그램이라는 아무런 문제의 소지가 없는 평범한 것이 북대에 의해 꺼내졌을 때는 그 성격이 달라졌다. 
 북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상담제도는 혼자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주변 교수님들의 능력이 닿지 않을때 학과별로 별도의 조직을 통해 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사실 명문대에서 학생들의 자살문제는 공공연한 비밀이자 학교가 풀어야할 과제이다. 때문에 과거에서부터 유사제도는 계속 존재해왔고, 이번에 북경대가 이런 제도를 명문화하고 공식화한 것이다.


 만약 <북경대 ‘문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이라는 기사가 작성되었다면 보면 그냥 소식을 전하는 뉴스일뿐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학생식당 음식값이 2마오(약 35원) 올랐다고 학교 운영을 비판하는 ‘급진적 사상을 가진’ 학생들도 대상”>이라고 기사를 적으면 문제는 달라진다.

 베이징대가 문제학생의 유형으로 제시한 10가지 중 한가지에 치우치고, 학생처장의 인터뷰에서도 제도의 주 목적을 언급한 바로 앞문장은 쏙 빼놓은채 논란의 씨앗이 될 만한 자극적인 부분을 발췌한 언론은 곱게 봐줄 수가 없다(한겨레가 저렇게 한것은 아닙니다. -.ㅡ) 더군다나 여론의 형성과정과 진행과정에서 상담제도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베이징대와 베이징대 학생들의 의견은 빠져있다.


 물론  여론의 우려처럼  '문제학생'을 선정하고 제도를 운영하는데 이런 폐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에서 문제되는 것은 제도의 도입 목적은 놔두고 발생가능한 문제점만을 부각시키면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2. 비판적 여론의 확산

 위에서 언급한 언론의 보도가 연이어 노출되면서 비평도 쏟아진다. 틀어진 문제의 핵심 때문에 비평의 핵심도 잘못되어 있고 그 여파는 일파만파 커진다. 촛점은 급진적 사상을 통제하는 베이징대가 되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여론이 절대다수에 의해 한 쪽으로 치우쳐서 건설적인 토의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오히려 대세에 반대하는 소수의 의견에 맹공을 퍼부어 싹을 자르려는 모습이다. 그런 행태들은 상담제도를 반대하는 건설적인 비판으로도, 북대의 학풍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한 건전한 비판으로도 보이지가 않았다. 
 상담제도를 사상통제로 해석하여 맹공을 퍼부은 언론과 여론. 하지만 예전부터 존재했던  학급마다 담당 교수를 지정하여 별도의 활동을 하게 했던 학년주임제도는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가? 유사제도는 1:1 사상통제이고 주임제도는 1:다의 사상통제 수단인가?

 사실 북대가 발표한 10가지 대상의 학생은 포괄적인 개념이고 상담제도의 세부계획과 규정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음에도 언론과 여론은 북대의 상담제도를 비판하고 북대의 시커먼 속내를 파헤치려고만 한다. 그렇기때문에 언론의 시퍼런 칼날의 방향이 잘못되었고 소식을 주로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여론은 잘못된 방향으로 형성되었다.



 베이징대를 졸업한 내 생각은 이렇다.  중국에서 대학들이 학교운영의 비판을 막으려는 의도였다면 굳이 이런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 예전부터 일정수준의 통제는 줄곧 존재했으니 베이징대나 다른 대학들에게 학생을 통제하는 별도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
 흐트러진 촛점을 다시 잡아보자. 북대가 예를 들었던 10가지 대상학생은 줄지않는 자살이나 탈선학생들에 대한 분석결과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어 사용이나 예시의 부적절함은 있었지만, 북대의 이번 시도와 사상 억압과는 거리가 있다. 혹 급진적 학생을 대상에서 빼면 상담제도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비난의 여지는 여전하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은 평등사회의 구호나 개인적 수치심을 이유로 비판할 것이고, 우울증이나 부적응 학생에 대한 이유는 공개된 상담이 사태를 악화시킨다면 반대할 것이다. 

 물론 이런 이유들이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발생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훗날 베이징 대에서 자살이나 탈선의 비극이 일어나게 된다면 학교의 무관심이나 미숙한 대처를 이유로 비난을 쏟아지지 않을까? 결국 반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 맹목적인 비판보다는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반대와 비판을 하는 것이 성숙한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닐까?

 카이스트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카이스트 개혁의 길이 옳았다면 문제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언론을 통해 들은 카이스트의 개혁"은 내가 생각해도 이점보다 문제점이 많아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카이스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3자일 뿐이다. 개혁이 성공적일지 지금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판단할 경험도 능력도 없다. 실제로 일부 언론이나 인터넷에는 개혁에 대한 카이스트인들이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와 여론은 자살과 개혁을 연관시키며 시퍼런 칼날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사실 베이징대에서도 매년 적지 않은 학생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자살을 하고, 살인까지 벌어진 적이 있다. 이번 카이스트와 비슷하게 3~4개월의 짧은 기간동안에 수명의 학생이 자살을 택한 적도 있다.

 북대는 이를 막으려고 상담제도를 도입하다 역풍을 맞았고, 카이스트는 이런 일들이 최근 학교의 현안과 맞물려 역풍을 맞았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대학이기 때문에 국민의 비판과 관심은 감안해야 하겠지만, 국민들도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언론에 휘말리지 않고 대학에 대한 믿음과 건설적인 비판을 하며 힘을 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P.S.-1 참고로 북대의 선진일류대학으로의 노력을 소개하면 모든 수업에서 청강생 중 1%는 낙제를 받게 된다.  또 4년동안 낙제과목이 8개를 넘으면 졸업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은 내가 재학했을때 기준으로 5개로 줄인다는 계획도 있었으나 실행여부는 미지수. 또 낙제이외의 경우에는 재수강이 불가능하다. 한 번 성적받으면 그게 끝. 고학년이 되어서 학점올리기위해 재수강은 원천불가.
 
P.S-2 위의 것은 제도적으로 규정된것이고....교수님들의 자부심이 높아서 학점은 낮게 주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음. 학점은 낮게주며 경쟁심을 유발하여 모두의 발전을 가져온다고 여김. 인문학에서 만점이란 불가능하다며 낮은 학점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 북대의 험난한 학사과정을 거치면 북대에서는 낮은 학점을 받지만 실력은 쑥쑥 자라서 외국에 나가면 더욱 돋보이기 때문에 더욱 혹독한 학위과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함. 
 그러다보니 학생들의 부적응과 자살문제는 북대도 예외가 아님.
Posted by cdh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