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나서 남들이 못한 유학까지 갔으면

 국위선양을 하고 올 A를 맞고 금의환향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난 내 유학생활을 후회하거나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끝마친 내 인생의 첫 완성품이기 때문일까?

 지금도 난 당당히 말하곤 한다.

 수업 빠지지 않고 열심히 듣고, 도서관에 가서 관련 책들 훝어보기도 하고

 중간 중간 내주는 숙제도 하고, 중국학생들과 토론도 하고

 중간, 기말고사도 피말리게 준비해서 치르고....

 이런 것들을 하면서 난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행동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중간 중간 중국 친구들의 도움도 받으면서 했지만,

 요령 피우지 않고, 오히려 힘든 길을

 남들은 가지 않으려 하는 길을 무모하게 선택하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야 무!모!라는 말이 실감나기는 하지만, 그 때는 그게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 그 길을 택했다.

 이런 과정들이... 유학이라는 배움의 환경....

 즉,중국의 대학 과정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성장시키고 발전시켜주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대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제출한 레폿을 읽어봤다.

 중국 역사에 관한 문외한인 나는 중국역사에 대해 평생을 보고, 듣고, 생각해온 중국의 수재들과 겨루어야 하는 것.

 힘겨운 게임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힘들었고, 그래서 내가 더욱 작아졌지만.....

 그 곳을 떠날 때 나는 변해있었다.

 대학교 1년때부터 교수님들이 말씀하시던 책을 많이보고, 많이 대화하고, 학술규범을 준수하라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었던 이야기....

 말문이 겨우 트이기 시작했던 내가 교수님들의 저런 이야기를 듣고 흉내라도 내면서

 조금씩 변해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감사하다.

 첫 레폿을 쓸 때, 내 머리는 뿌셔질 뻔 했다.

 1시간동안 몇 줄도 못써서 좌절을 했었다.

 그래도 혼자힘으로 하려고 했고, 해냈다.

 그 첫 결과물은 지금 내가보면 귀엽기까지 하지만....이 정도 쓰려고 그 많은 날을 고생했나 싶을정도로 안쓰럽지만...

  학교 다니면서 우리의 껌재료가 되었던 북대의 독특한 학풍과 교수님들은.....

 나에겐 훌륭한 거름이 되었고.....

 나는 그 거름을 밑바탕으로 작은 묘목이 되어 그 곳을 떠났다...

 그렇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ㅎㅎㅎ

 지금도 레폿쓰면서 밤을 지새울 유학생들이여.....

 밤새지말란말야~! ^^




p.s. 내가 3사관학교 후보생 시절에, 소대장시절에 툭하면  들었던 생각이 차라리 하루에 하나씩 레폿쓰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어요~!
     후배들이여~! 사회는 더 힘들고 냉정하다. 강해지거라~! 



Posted by cdhage

 나는 라디오를 즐겨 듣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도 그랬고....

 중국에 있을 때도 그랬고....

 래디오는 그냥....땅기지 않았다고 해야하나...

 그냥 가끔 차에 탔을 때 무료함을 달래는 것...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택시를 타게 되면 기사가 듣던 래디오를 그냥 자의반 타의반 듣게 된다.

 그 말투를 따라하기도 하고 ^^

 래디오에서 나오는 별난 소식에 기사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그래서 중국래디오를 들으면 지금도 택시안에 앉아있는 듣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 때 그 시 절...

주파수를 외쳐대면서 자신의 방송국을 부르짖던....

 요상하고 다양한 광고들....

 우연한 기회에 듣게된 래디오를 통해 예전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Posted by cdhage
고객 : 다 해서 얼마에요 ?
점원 : 8위안 7마오에요
고객 : (10위안을 건네준다)
점원 : 2마오 있으세요?
점원 : 2마오 있으세요?
점원 : 2마오 있으세요?
점원 : 2마오 있으세요?
점원 : 2마오 있으세요?

마!!!

2마오가 왜 필요한데...왜 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왜

8원 7마오라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물건값에 2라는 숫자는 없단 말이다.

허나 점원의 기세에 눌려 2마오를 소심하게 쓰윽 내밀면

5마오가 돌아온다....

원래 10원 내고 1원 3마오를 거슬러 받을 거 10원2마오를 내고 1원 5마오를 받았군

그냥 낸 돈에서 물건값을 뺀 돈을 거슬러주면 끝날 것을 계산을 조금 더 거친다

왜 그럴까?

1.판매자 입장에서 잔돈이 많이 필요해서? 울나라 슈퍼에서 잔돈이 많이 필요하듯 장사를 하다보면

거스름돈이 많이 필요하니깐....그런이유

2.중국 화폐단위의 특수성. 우리나라는 10원 50원 100원 500원 1000원 5000원 이렇게 1,5,10 단위로

화폐를 발행하지만 중국은 1원 2원 5원 10원 20원 50원 100원...1,2,5,10단위로 화폐를 발행한다.

우리나라보다 다양한 화폐의 발행은 거스름돈의 계산방식에도 조금 다른 차이를 만든다

 예를 들어 7원짜리를 사고 10원을 냈을 때 우리나라면 1원짜리 3장을 거슬러 주겠지만 중국은 그

외에도 2원짜리를 추가로 받아서 5원짜리를 거슬러줄수 있는것이다.
  
3.마지막으로 각 나라의 셈 계산 방식의 특수성 중국뿐만아니라 다른나라에서도 모두 우리와 같은

셈방식일까?

우리는 낸 돈에서 물건값을 빼지만....

물건값에서 더해가며 낸 돈의 액수가 될때까지 돈을 세며 거스름돈을 계산하는 나라도 있다고 들었다.

두번째이유에서 밝혔듯이 지난 수십년간의 화폐단위에 익숙해진 중국인의 생활방식탓인지 아니면

옛부터 내려오던 중국인의 셈 관념때문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중국인의 거스름돈 계산방식은

분명 차이가 있다.

 6천원짜리 밥 먹고 밥값 뿜빠이하는데 잔돈이 없어서 만천원 주니깐 뭔데? 라고 하길래....이런글을 써본다.

Posted by cdhage

내가 있을때 130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214원하니깐 80원정도 올랐네....

라고 생각했는데

80원정도 오른것도 엄청나지만

이걸 실제 생활에 적용하면 더 엄청난 것이 된다.

예전에 1500원 가지고 한달을 버텼다면 이제는 900원으로 한달을 버텨야 된다.

당시에 중국 시골에서 올라온 중국친구가 한달에 600원을 버텼다.

하루에 20원씩 ...학교식당에서 밥먹고 저녁에 디저트로 과일 사먹고 나머지 용돈으로 조금 남기고...

물가 오른 것을 감안하면 1500원으로 버티던 유학생들도 저렇게 살아야 한다.

내가 허리띠 졸라맸을때....

하루에 50원을 가이드라인으로 잡고

학교식당에서 밥먹고, 소비를 최소화하고...

그러다가 남는 돈은 주말에 나에게 주는 선물...마트도 가고...이것저것 먹고..

그렇게 900원정도로 살았는데...

이젠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환율의 시대가 온 것이다.

우와~~~~~~~~~~~~~~

몇 백원 몇 십원...이렇게 이야기하니 감이 잘 안올 한국분들을 위해

우리나라돈으로 환산해서 소개해드리자면

예전에 버스를 130원주고 탔다면 이제 214원줘야되고

예전에 중국식당에서 일반 음식을 1개를

2340원 주고 시켰다면 이제 3840원 줘야되는거고

데스크탑 본체를 520000원 에 맞췄다면 이제 8560000줘야 하는거고

학비로 예전에 3380000원 냈다면 이제  5560000원 내야되는거고

한달 방값 예전에 230000원 내던걸 이제 380000원 내야되는거다...

액수가 크면 클수럭 헉헉헉 소리가 절로 난다...ㅜㅜ

유학생들은 예전에 한달 생활비로 얼마를 썼던....

예전과 같은 질의 삶을 살기가 어려워진것은 확실한데.....

때 맞춰 귀국 잘했군 후후훗....
Posted by cdhage
 
 이방인이라는 것은 외롭고 쓸쓸하게

 기존에 있는 사람들과 깰 수 없는 벽을 놓고 같이 살아가는 것일까?

 틀린 말 같지는 않다

 더군다나 피에 민감한 동양 사회에서는 말이다.

 민족, 인종 편 가르기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인간에게 이방인이란 쉽게 포용할 수 없는

 대상임은 사실같다.

 허나 멀고 먼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롭고 쓸쓸한

 불쌍한 처지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외롭고 쓸쓸하기에 혼자만의 세계를 마음껏 누리는 자유를 맛볼 수 있고,

 편 가르기를 해서 같은 편이 아니기에 잘못을 해도 눈감아주는 아량을 자주 경험할 수도 있고

 외지인에 대한 가득찬 호기심을 들고 다가오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사람을 사귈 수도 있다.

 지금 내가 가장 그리운 것은

 세상만사 고민을 몽땅 싸들고 한탄하고 걱정하면 나홀로 시가지를 배회하던 그런 자유(?)

 시가지도 좋고 뒷골목도 좋다.

 가본 곳은 잘 아는 곳이어서 좋고

 안 가본 곳은 새로운 경험이어서 좋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냥 한없이 걷고 장을 보던

 그런 삶의 여유(?)나 자유가 지금은 없다...

 외국인이어서 알면서도 모른척하기도 말야...^^

 참 재밌는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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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썼다가 제대로 업로드가 안되서...날려버린 글인데....검색엔진을 통해서 계속 들어오시길래...다시 올립니다. ㅡㅡ: 봇들은 그 몇 분 동안 내 블로그에 방문했던 것인가? 하....




중국의 54운동은 민주와 과학을 구호로 내건 중국의 반제국주의 반봉건제도의 애국운동입니다. 헌데 중국에서는 이런 54운동을 마르크스주의와 꽁꽁 묶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그렇지 않다는 것....당신도 아시지 않습니까?

 당시 제출했던 레포트에서는 54운동이 발생한 원인, 마르크스주의와 54운동사이의 관계,당시 노동자계급과 마르크스주의의 관계등을 토대로 54운동의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54운동과 마르크스주의 간에 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허나 1919년 중국에서 발생한 마르크스 주의가 러시아 혁명을 이어받아, 마르크스주의를 토대로 전개한 애국운동이라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그와는 달리 54운동은 신문화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마르크스주의는 54운동 당시 나타난 다양한 사상 중 하나의 사상이었을 뿐 결코 54운동이 일어나는데 핵심이 되는 사상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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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에 걸린 포스터는..."자수해서 광명찾자!"라는 뉘앙스입니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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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미국 공원에서 한 동양계 연인의 애정행각을 담은 사진을 포스팅했던 적이 있지요.

 한국인들이 혹은 외국인들이 중국에 와서 놀라는 것이 서양 못지않은 길거리 애정행각들입니다. 밤낮때를 가리지 않고, 실내외 장소를 가리지 않는 그들....

 老少도 가리지 않습니다.

 체육복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저런 애정행각과...북대 내에 위치한 이름없는 호수에서는 밤마다 커플들의 애정행각이.....그 밖에 도서관이나 기타 장소에서 야밤에 목격되는 애정행각들은 24세 이상 구독가능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

 그럼 저는 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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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북대생들의 밥줄. 밥카(식당카드)를 포스팅 했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학생식당에서 밥카활용편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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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南美食의 풍경입니다. 1층에서 밥을 찜하고 2층에서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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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식당, 만두식당,햄버거식당(서양 패스트푸드),중국식 패스트푸드(?)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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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家园의 풍경입니다.


일반적으로 북경대 학생식당의 경우 점심,저녁시간 전에 미리 음식을 준비해놓고, 코너마다 진열해놓고 ,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먹을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청화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일부 음식의 경우 주문 후에 만들거나 아니면 계속 만들면서 팔기도 합니다.
Posted by cdhage



 중국에서 장을 보러 가시면 중국식 소시지나 저런 동물 친구들을 볼 수 있는데요, 소시지는 어떻게 먹는지 알겠는데, 동물친구들의 경우...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옆에 살짝 돼지껍데기 튀긴것(?)도 보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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