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된 한국전쟁은 사실상 냉전으로 기울던 세계정세 속 미소 거대 군사세력간의 대립이었다.전쟁초기에 인민군이 창설된 후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기 위한 시간이 충분치 않았음에도, 개전 후 북한군은 3일만에 남한의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2개월 뒤에는 낙동강 일대까지 진출하여 미군의 개입이 없었다면 순식간에 한반도 공산화도 가능했을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선보였다.
 그렇다면 북한은 단시간에 그와 같은 가공할 만한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일까? 세월이 흘러 관련비밀문건들이 공개되면서 당시의 정황도 하나둘씩 밝혀졌다.러시아의 외교문서에 따르면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고 대규모 공세를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쟁계획 수립부터 세밀한 기술적 자문과 현대화 장비의 사용 및 전장의 통신수단까지 도움을 주던 소련고문단이 있었다.
 
 그러나 치밀한 계획과 기술상의 지원만 있고, 고도로 훈련된 전투부대가 없다면 북한이 전쟁초기 그와같은 전적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의 과거 전투경력을 돌이켜보았을 때 즉시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인원으로는 당시로부터 10여년전 중국동북지역에서 항일유격전에 참여했던 소수에 불과하다. 허나 항일유격전에 참여했던 인원들조차도 정규전이나 대규모부대간의 전투경험 및 훈련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이들로 편성된 부대로 소련고문단에 의해 세워진 현대화대규모침공계획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렇다면 당시 북한인민군은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인적 군사자원을 확보했던 것일까?

<요청이 있을 시 2편도 준비하겠습니다.>
Posted by cdh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