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문에 처음 들어섰을 때 군의 높으신 분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분이 물으시길 자네는 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사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당시 나는 사기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드렸고, 그 분은 군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사실 둘 다 중요한데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을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내 생각은 바뀌어서 군기는 사기보다 훨씬 중요하다 생각한다.

 군에서 꼭 있어야 하는 것은 군기이다. 군 생활을 하신 군.필.남.성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군은 참으로 비생산적인 집단이다. 효율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절대적으로 더 많다. 군대얘기가 재밌고 하면 할수록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바로 내가 그런 상식 밖의 말도 안되는 일들을 아주 아주 힘들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잘 생각해보면 군대는 존재자체가 비생산적이다. '만에 하나'의 가정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천문학적인 인력과 돈이 소비된다. 또한 군의 존재때문에 사회적으로 효율이 저하되는 것들도 있으나 국가는 그 또한 기꺼이 감수하고 군을 운영한다. "만에 하나"가 벌어지지 않으면 저런 사회적 손실과 경제적 손실은 고스란히 증발되버린다.이렇게 존재자체가 비생산적이다 보니 그 하부 조직의 운영에도 비생산적인 면들은 넘쳐난다. 군.필.남.성들이 해왔던 훈련들을 예로 들면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세히 적지 않겠지만, 군 생활 중 내가 한 훈련들은 적어도 입대 전 내가 생각했던 모습의 훈련은 아니었다.

 그럼 이렇게 비생산적인 조직은 내쳐지지 않는 것은 국가의 존립과 직결된 것이기 때문이다.절대반지와 같이 너무나 중요한 국가의 존립. 그렇게 때문에 존재의 목적이 비생산적이고 조직의 운영이 비생산적이어도,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적어도 군을 비판하는 사람은 없어도 군을 없애자는 사람은 없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좀 비생산적이고 상식밖의 조직이기는 하지만 군은 꼭..꼬..옥 우리에게 필요한 집단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점이 있다. 최근(근 10년간) 군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에 의해서 군이 변화하고 있다. 비생산적인 것을 바꾸려고하고, 군 내부의 문화도 새롭게 정착시키려고 하고 있다. 나 역시 이런 변화를 뜻깊고 의미있는 일이라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조직의 특성이 비생산적이여서 그런지 저런 생산적인 모습으로 시도되는 변화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겉모습만 바뀐다는 인식이 생겼다. 물론 예산절감이나 불필요한 행정을 감소화시키려는 긍적적인 면도 있었다. 하지만 군은 결코 생산적이고 효율적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넘을 수는 없었다. 또한 병영생활에서도 민주주의의 따스한 햇살이 비춰지기 시작하여 예전의 악폐습들은 점점 사라져갔다고 느꼈지만, 군이 군답지 못하다는 생각역시 점차 강해졌다.

 앞서 인용한 높으신 분의 말씀을 다시 인용하면 "사기를 높이는 것은 상하급자의 마음이 통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 하지만 군기를 세우는 일보다는 쉽다."

 군기. 다시 말하자면  군의 기강이다. 기강이 없는 군대가 어찌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겠는가?

 만에 하나 벌어질 지도 모르는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군이 막대한 희생 속에서도 존재하고 있지만, 최근 우리 군의 모습은 기강이 점차 사라지는 듯하여 위태롭게 느껴진다.

 군대는 단순히 젊은 남성들이 거쳐야할 성년의식을 위한 장소가 아닌 국방의 의무를 위해 거쳐가는 희생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더욱 의미있는 희생은 입대전의 생활과 더욱 유사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닌 확실하게 국가 방위에 보탬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병영문화 정착에 목이 매어 군기를 흐트러버리는 국방부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군의 훈련목표 달성보다 무사고에 더 연연하는 모습또한 그러하다.

 내가 군생활하는 그 짧은 시간에도 병사들의 전투력은 저하되고 있다는 생각을했었다. 그렇다고 병영생활은 개선되었으니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악폐습은 줄어들었지만 그들의 전우애나 단결력도 줄어들었다고 느꼈다.

 또 하나의 예로 예비군 훈련을 들고 싶다. 나도 앞으로 계속해서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하지만 훈련은 훈련다워야 하지 않을까?한다. 받는 사람은 힘들수록 짜증나고 힘도 들지만 그렇게 해야 예비군 훈련을 하는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형식적인 예비군 훈련은 예산낭비이며, 사회적 인력 낭비이다.

 부디 군 수뇌부분들께서 다시 자각하시어 현역이든 예비역이든 군기를 바로잡아 주시길 희망한다.

 우리 자유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피~~~쓰
Posted by cdh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