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북경방문기간중 체험한 변화 중 하나가 스마트해진 중국식당들입니다. 제가 간 음식점들 절대다수가 전산화된 주문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더이상 주문한 음식을 종이에 적지 않고 단말기에 바로 입력하는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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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일부식당에서는 메뉴판까지 디지털화했답니다. 그 디지털 메뉴판을 사용하는 저는 불편함을 느꼈지만...중국의 변화가 피부에 팍팍 느껴졌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중국식당이 디지털되어도 그 맛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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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에서 나오는 세가지 재료로 만든 地三鲜입니다.

 

 그런데 예전과 다른 것 같기도 했어요. 일단 재료들을 바삭하게 익힌 후에 복아서 가지가 바삭바삭하게 씹히는 맛이 좋았답니다. 짭쪼름하게 간도 적당했고요. 기름은 많아서 느끼해보이기도 하지만 중국요리에서 저 정도 기름은 매너입니다 ^^띠산시엔에 들어가는 재료는 가지와 고추 그리고 감자 이 3가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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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샤오니우로우미엔이라고 하죠.요리라고 하기까지는 부족하지만...첫 소개하는 중국음식 소개에 앞선 워밍업 정도로 생각해주십시오. 우선 소고기면은 매콤한 국물을 베이스로 조금은 기름진 소고기 부위를 푹 고아서 몇 점 올리고 향채로 마무리 데코레이션을 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한국분들 입맛에는 향채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향채는 넣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셔도 됩니다.
 향채는 저도 처음엔 못 먹다가, 중국생활 조금 하다보니 향채를 넣어도 음식을 못먹을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먹다보니 가끔씩 중국요리나 면을 먹을 때 향채가 없음 허전하기도 하더라고요 ^^

 Anyway...향채는 그렇구요 각자의 기호에 따라 중국식초나 고추분말을 넣기도 합니다 ^^ 저는 고추분말 많이 넣어서 얼큰하게 먹으면 맛있더라고요.

 소고기면을 잘하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은 면이나 소고기를 삶는 정도에 따라 판가름나기도 하지만...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국물...국물이 끝내줘야 한다는 것. 이번에 북경에 가서 면을 3번 정도 먹었는데 그 중 한 집만 괜찮더라고요. 짭쪼름하기는 하지만...시원하고(란주라면풍의 향신료때문에 시원한게 아님) 진한 국물이 꽤 괜찮더라고요.
 
 그럼 북경 가시면 소고기면 한그릇 하실래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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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의 한 쇼핑센테 화장실 입구의 사진입니다.

여성분들 오른쪽으로 가시겠습니까? 확실해요?

남성분들 왼쪽으로 가시겠습니까? 확실해요?

 추상적인 디자인이 인상적이지만 확실하게 할 것들은 확실하게 전해져야 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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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출입국신고서 뒷면에 적힌 안내사항입니다. 앞면과는 다르게 영어로만 적혀있습니다. 저기서 제 눈길을 끈것은 Alien. 朋友~!에일리언은 외계인이잖아...중국 국경 밖에서 왔다고 외계인이라고 하면 섭섭하지...
 외국인을 외계인이라고 하다니..잘못된 영어 오역의 또 하나의 대표사례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던 나는 영어 애.송.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전을 검색해봤는데

 두~둥! alien이 외국인이라는 뜻이 있었다. 중국정부의 영어표현은 틀리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alien이라는 단어가 외계인이라는 단어로 흔히 사용되고, alien내의 외국인이라는 의미의 표현은 다소 배타적인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만큼 대체할 수 있는 foreigner라는 좋은 단어를 사용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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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기숙사(샤오위엔)에서 교실쪽으로 가다보면 인문학과들의 과사무실이 모여있는 6개의 건물 한 가운데 있는 잔디밭이 지진시 긴급대피하는 지정 대피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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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내서 북경으로 추억여행을 왔습니다.
 예전에 자주 찾았고, 중국생활의 추억이 깃든 곳들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선견지명 있으신 박진영 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었습니다.
 "내가 살던 그 집... 그 집이 내집이었어야해"(환율도 오르고....집 값도 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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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추억속에는 정반대로 저런 곳에서는 살기 싫은 곳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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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을 시작하기도 하고 끝마치기도 했던 추억의 사진 속에 담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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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억을 되짚어보며 풍경과 소리는 담을 수 있었지만
코 끝을 스쳤던 진한 추억은 담을 수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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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1. 3. 7. 23:52

 귀순을 거부하고 망명을 택한 4인.

 분명히 당신들한테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닌데...
 
 상황을 이렇게 조성해나가는 당신은

 반전 종.결.자...

 그들이 갖고 있는것은 결코 어설픈 똥배짱이 아니다.

 그런 그들에게 달인의 휘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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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쁘고 선명한 과일의 색을 보고 과일을 고르는 당신. 중국에서는 사기전에 한번 비벼보고 사셔야 겠네요. 항간에 녹색 귤이 더 맛있다는 근거없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 이렇게 색을 칠한 이유는 더 잘팔리라고 칠했지, 팔지 않으려고 칠한 것은 아니잖아요? 

 과일을 살때 상자채 구매하는 당신. 중국에서는 조심하셔야 겠네요. 일부 상인들이 석회종이상자를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골판지의 종이사이를 석회로 굳혀 무게를 더 나가게 하는 기가막힌 수법 ^^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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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분들이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라는 민주화 시위가 있었고, 중국정부의 무자비한 제압에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이번 쟈스민 혁명에 대한 포스트를 쓰다보니 중국의 민주화에 대해 조금 건드렸고, 중국의 민주화 시위 역사에 대해 뭉글뭉글 넘어가는 것 같아 따로 포스팅을 따로 하려고 합니다.

 천안문 사태의 발생과정에 대해서는 구글링하시면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전달해드리고 싶은것은 쉽게 찾을 수 없는...혹은 다른 곳에는 없는 저만의 견해 입니다.

 1. 학생들은 민주적이었다?
  
 사실 개도국의 정치환경에서 높은 민주적 의식수준을 보이기는 어렵습니다. 당시 중국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 말로는 "민주를 글로 배웠습니다."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딱 맞네요. 당시 그들과 함께하지 않은 후세의 사람으로서 그들에 대해 정확히 논하기는 힘듭니다. 그들은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 나섰습니다. 용감하게 중국정부에 맞섰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들이 보여주었던 행동들은 결코 민주적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표면적으로 민주적 구호를 내건 것과는 반대로 그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행동들은 비민주적이었죠. 조직이 방대해지자 자연스럽게 공동의 목표를 향한 싸움이 아닌 권력을 향한 내부의 다툼이 나타났고, 그과정에서 일어난 비민주적 행동들이 나타났습니다.시위대의 노선을 정할때 자신의 권력과 직결되는 문제를 민주화보다 우선시 하는 모습까지 나타났습니다.또한 중국정부를 향한 막무가내 식의 요구와 행동으로 사태를 어렵게 이끌어가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무자비한 중국정부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피해자(?)가 되었기 때문에 과정에 있어서 불합리하고 잘못된 점들이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서는 안됩니다.
 

2. 시민들은 민주화 시위에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

 
 천안문사태 단계별 시민들의 반응은 달랐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제껏 중국인들이 하지 못했던 것을 나이 어린 학생들이 하는 것을 보고 용감하고 장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게 다일까요? 사실 당시 천안문사태가 베이징 시민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중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것은 시위의 성격에 대한 호불호 탓도 있겠지만 민주화에 대한 시민의식도 한 몫했다고 생각됩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사건을 직접적으로 경험했고, 지금도 그들은 생존해 있습니다. 이것이 중국의 시민의식과 성향에 대한 증거이자 답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사건은 "민주"에 대한 중국민들의 욕구와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편, 그 반대로 중국의 민주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를...즉 난관과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고 생각합니다.


 3. 그 많은 대중들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모인 사람이다?

  
 그들은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위해 용감하게 나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적어도 시위대의 앞에 나서 대중을 선동했던 이들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매우 강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도 내부의 권력암투를 위해 비민주적 행동을 서슴치 않았으며, 정부와의 협상에서 극도대결양상을 펼쳐 상황을 스스로 악화시켰습니다.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그들이, 뜻 깊은 민주화 시위를 수포로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는 개인적 생각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화 시위과정에 참여한 많은 참가자들 중 끝까지 남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여기에는 물론 중국정부의 초강경진압도 한몫했죠.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젊은 혈기에 의한 참여나 접해보지 못한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려는 무리 였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건의 요소요소에 있어서 방향을 이끈 것은 비단 중국지도부의 대응뿐만이 아닙니다.민주화 시위세력 역시 사태를 점차 악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즉, 무자비한 중국정부만이 유혈사태까지 벌어지는 참사를 일으킨 주범이 아닌 협상에 대해 서툴고 진정 민주화 의식이 부족한 시위대 역시 사태를 악화시킨 큰 세력입니다.


4. 류사오보는 당시 시위의 주도 세력인가?

 사실 저는 그에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그에 관해서는 천안문 사태에 관련된 내용만 일부 알고 있었을 뿐이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당시 류사오보는 영향력 있는 인사였고, 때문에 파급효과도 대단했습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이유불문하고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온 그의 행동은 결코 凡人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천안문사태를 이끈 이는 결코 류사오보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류사오보가 당시 천안문 광장에 있었던 이유와 그가 바랬던 시위의 모습도 시위주도세력의 움직임과 모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노벨상을 받고 그가 중국정부의 억압을 받고 있는 상황이 그는 천안문사태의 주도 인물로써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인물로 오인되고 있는 것 같아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그가 중국 민주화 인사일수도 있지만, 천안문 사태의 주도 세력은 아니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민주화 시위과정에서 어긋난 점을 그는 알고 있었고, 류샤오보는 이런점들을 교정해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갔고 그는  결코 원하지 않았을 유혈사태까지 일어났죠.
 이런 그를 천안문 사태의 주도적 인물로 해석하는 것은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cdhage